계절시(季節詩)감상

題丁未新曆 (제정미신력) - 李廷馨 (이정형)

-수헌- 2022. 12. 20. 13:28

조선시대에는 동짓날이면 관상감(​觀象監)에서 새해 책력(冊曆)을 제작하여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책력은 월일과 절기 등을 적은 요즘의 달력과 비슷한데 일식(日蝕)이나 월식(月蝕) 같은 천체의 운행이나, 농사일과 택일에 필요한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어 일상생활에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題戊子新曆 제무자신력      李廷馨 이정형 

무자년 새해 책력에 쓰다.

 

時和物阜又年豊 시화물부우년풍

계절은 조화롭고 만물 풍성하고 풍년 들기를

聖善康寧兄弟同 성선강년형제동

어머님 강녕하고 형제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春夏秋冬三百日 춘하추동삼백일

봄 여름 가을 겨울 일 년 삼백 일을

啣盃取醉樂無窮 함배취취악무궁

술 마시고 즐기며 즐거움 끝이 없기를

 

※聖善(성선) : 성선(聖善)은 훌륭하신 어머니를 말한다. 시경에 ‘어머니는 성스럽고 착하나 우리는 착한 사람이 없구나. [母氏聖善 我無令人]’이라고 하였다.

 

[이 시는 이정형(李廷馨)이 정해년(丁亥年;1587년​) 동지(冬至)에 ​나이 40이 되는 무자년(戊子年;1588년)의 새 책력을 받고 새해의 희망사항을 적었다.]

 

 

題丁未新曆 제정미신력      李廷馨 이정형

정미년 새 책력에 쓰다

 

丙午年過丁未來 병오년과정미래

병오 년이 지나가고 정미 년이 오니

年來年去苦相催 년래년거고상최

해가 가고 오는게 서로가 고통스럽구나

壯懷早抱經綸志 장회조포경륜지

젊은 시절 일찍이 경륜과 뜻을 품었는데

老罷漸無襪線才 노파점무말선재

늙으니 점차 천박한 재주마저 없어지네

 

又 또

眼暗耳聾白髮新 안암이롱백발신

눈 어둡고 귀먹고 흰 머리 새로 나니

五旬已老况六旬 오순이로황륙순

오순에 이미 늙었는데 육순은 어떨까

血氣旣衰戒之得 혈기기쇠계지득

혈기가 쇠했으면 물욕을 경계하라는

聖師遺訓更書紳 성사유훈경서신

성현의 가르침을 다시 허리띠에 적네

 

又 또

少年志氣勇先登 소년지기용선등

젊은 시절 의기와 용맹의 뜻이 높아서

百事當前可謂能 백사당전가위능

무슨 일을 당해도 해 낼 수가 있었지

多病如今潦倒甚 다병여금료도심

이제 병도 많고 매우 늙고 쇠약해져서

醉生夢死愧無稱 취생몽사괴무칭

취생몽사 하여 부끄럽고 할 말도 없네

 

又 또

仁爲己任死方已 인위기임사방이

자신에 너그럽다가 이미 죽을 때를 당하니

重遠功夫敢忽忘 중원공부감홀망

거듭 깊이 공부함을 감히 잊고 소홀했구나

少日因循老摧退 소일인순로최퇴

젊은 시절 떠돌다 늙어서 물러날 때 되어

此身環顧只悲傷 차신환고지비상

이 몸을 되돌아보니 슬프고 불쌍할 뿐이네

 

[이 시는 이정형(李廷馨)이 1606년(병오년) 동지에 받은 정미년(丁未年;1607년)의 책력에 새해를 맞는 자신의 소회를 적었다. 이 시에서 육순(六旬)을 앞둔 자신의 병들고 노쇠한 처지와 일생을 돌아보는 회포를 적었는데, 바로 이 정미년에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별세하였다.]

 

※襪線才(말선재) : 말선(襪線)은 버선을 꿰맨 실이란 뜻으로, 풀어봤자 짧아서 쓸모가 없으므로 곧 자신의 천박한 재주를 뜻한다.

※血氣旣衰戒之得(혈기기쇠계지득) : 논어(論語) 계씨 편(季氏篇)에 공자께서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해야 할 일이 있다. 젊을 때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으므로 정욕(情慾)을 경계해야 한다. 장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막 왕성해지므로 다툼을 경계해야 한다. 노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약해졌으므로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라고 한 것을 인용하셨다.

※醉生夢死(취생몽사) : 술에 취하여 자는 동안에 꾸는 꿈속에 살고 죽는다는 뜻으로, 아무 하는 일 없이 한평생을 흐리멍덩하게 살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정형(李廷馨,1549∼160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훈(德薰), 호는 지퇴당(知退堂) 또는 동각(東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