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歲暮 除夕 除夜

-수헌- 2022. 1. 13. 17:19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의 절기가 지나면 다시 24절기가 시작되는 입춘(立春)이 오는데, 이 시기는 음력 12월 곧 섣달에 해당하며, 섣달은 세모(歲暮) 또는 궁랍(窮臘), 세만(歲晩), 세말(歲末)이라고도 한다. 음력 섣달 그믐밤을 제석(除夕) 또는 제야(除夜)라고도 한다.

 

歲暮 세모    茶山 丁若鏞 다산 정약용

 

歲暮樓山雪正深 세모루산설정심

한해 저무는 누산에 눈이 매우 쌓이니

絶無車馬到溪陰 절무차마도계음

개울가 응달에 찾는 거마 하나 없네

恒存洒脫塵埃氣 항존쇄탈진애기

항상 풍진 세상 벗어날 생각 가지니

遂有硏窮宇宙心 수유연궁우주심

우주의 진리 탐구할 마음이 생겼네

 

富貴極天終有盡 부귀극천종유진

하늘에 닿은 부귀도 다할 때가 있고

風煙滿地可相尋 풍연만지가상심

땅에 가득한 풍연도 서로 찾을 수 있네

休將妄念商量去 휴장망념상량거

헛된 마음으로 헤아려 가려 하지 말게

未信奇材老鄧林 미신기재노등림

인재가 등림에서 늙는 건 믿을 수 없네

 

風煙(풍연) : 바람과 안개. 바람이 불면 안개는 흩어지게 마련인데 이들도 서로 찾을 때 있다는 의미.

鄧林(등림) : 전설에 좋은 나무만 있다는 숲으로, 신선이 구름을 타고 다니며 노는 곳이라 한다.

 

臘夜 납야    梅溪 매계  曺偉 조위 

섣달 그믐날 밤

 

手杷緗篇對短檠 수파상편대단경

빛바랜 책을 손에 잡고 등잔을 마주하니

古甁梅萼獨多情 고병매악독다정

고병의 매화꽃송이가 유독 다정하구나

霜花看瓦氷生硯 상화간와빙생연

기와에 서리꽃 피고 벼루에 얼음 어는데

月彙當空杵滿城 월휘당공저만성

달무리 걸리고 온 성안에 절구질 소리

 

徇俗何妨觀蜡祭 순속하방관사재

사제를 보고 어찌 즐겁지 않다 하랴

題詩聊可報嘉平 제시료가보가평

가평에 보답해 즐기는 시를 지었네

醉來忽入白天夢 취래몰입백천몽

취하여 문득 대낮 꿈속에 들었다가

驚罷譙樓畵角聲 경파초루화각성

초루의 화각 소리에 놀라 잠을 깬다

 

*蜡祭(사제) : 납일(臘日; 보통 동지 뒤 세 번째 술일(戌日)에 한 해 동안 농사짓는 데 도움을 주신 신(神)에게 풍년(豊年)을 감사한다는 뜻에서 지낸 제사(祭祀) 이름. 하대(夏代)에는 청사(淸祀), 은대(殷代)에는 가평(嘉平), 주대(周代)에는 대사(大蜡), 진대(秦代)에는 납제(臘祭)라 불렀다. 예기(禮記)에 사제를 구경[觀蜡祭]한 자공(子貢)에게 공자(孔子)께서 즐거웠냐고 묻자 자공이 즐거운 줄 몰랐다고 하니, 공자께서 농부가 백일 동안 수고하고 사제를 지내며 하루를 즐기도록 임금님이 은택을 베풀었는데 [百日之蜡 一日之澤] 자공이 그 의미를 몰라 즐거움을 모른다고 하였다.

 

 

守歲次淳夫韻   수세차순부운     梅溪 매계  曺偉 조위 

섣달 그믐날 순부의 시에 차운하다

 

守歲今宵栢酒濃 수세금소백주농

섣달그믐 오늘 밤의 백주 맛이 진해서

瞢騰睡睫已濛濛 몽등수첩이몽몽

이미 몽롱하게 취하여 잠이 쏟아지네

暗催白髮滄浪外 암최백발창랑외

창랑 밖에서 남몰래 백발을 재촉하니

忽遞靑春泱漭中 홀체청춘앙망중

돌연 청춘은 번갈아 앙망 중에 드는구나

欲問東坡追古俗 욕문동파추고속

동파에게 물어 옛 풍속을 따르고 싶고

擬尋杜位繼前蹤 의심두위계전종

두보를 모방하여 남긴 자취 잇고 싶은데

空添犬馬殘年齒 공첨견마잔년치

남은 인생 공연히 견마지로 더하려 해도

碌碌其如舊日慵 록록기여구일용

녹록함이 그 옛날 게으름 피우듯 하구나

 

栢酒(백주) : 사기(邪氣)를 물리치기 위해 설날에 마시는 측백나무 잎을 넣어 빚은 술.

欲問東坡追古俗(욕문동파추고속) : 송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1062년 세모에 궤세(饋歲), 별세(別歲), 수세(守勢)의 세모 풍속에 관한 연작시 삼수(三首)를 지었다.

 

*曺偉(조위, 1454 ~ 1503).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과 더불어 초기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저서로 매계집이 있다.

*순부(淳夫, 1469~1502)는 조선전기 권지부정자, 예문관대교, 예문관봉교 등을 역임한 정희량(鄭希良)이다. 순부(淳夫)는 자, 호는 허암(虛庵).

 

除夕感吟 제석감음    趙顯命 조현명

섣달 그믐날 밤 느낌을 읊다.

 

我齒居然五五春 아치거연오오춘

내 나이 어느덧 오십 하고도 다섯

年光欲挽奈無因 연광욕만내무인

세월은 잡으려 해도 어쩔 수가 없네

常時昔日如今日 상시석일 여 금일

지난날을 평소에 오늘처럼 아꼈다면

未必徒爲此樣人 미필도위차양인

분명코 지금의 이런 모습 아닐 텐데

 

*趙顯命(조현명, 1690~1752) : 조선 후기 경상도 관찰사,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치회(稚晦), 호는 귀록(歸鹿) 녹옹(鹿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