穀雨와 茶 (곡우와 차) 4 - 李奎報 (이규보)
孫翰長復和 次韻寄之 손한장부화 차운기지 李奎報 이규보
손 한장이 다시 화답하기에 차운하여 부치다
古今作者雲紛紛 고금작자운분분
예나 지금이나 구름처럼 많은 문장가들이
調戲草木騁豪氣 조희초목빙호기
초목을 희롱하며 멋대로 호기를 펼치는데
磨章琢句自謂奇 마장탁구자위기
갈고닦은 문장과 시구 스스로 좋다 해도
到人牙頰甘苦異 도인아협감고이
사람들의 입속에서는 쓰고 단것이 다르네
壯元詩獨窮芳腴 장원시독궁방유
장원의 시만이 홀로 아름답고 뛰어났으니
美如熊掌誰不嗜 미여웅장수불기
아름다운 문장을 뉘라서 좋아하지 않을까
玉皇召入蓬萊宮 옥황소입봉래궁
임금님께서 봉래궁에 불러들여서
揮毫吮墨銀臺裏 휘호연묵은대리
은대에서 문장을 짓고 글을 쓰게 하였네
君材落落千丈松 군재낙락천장송
그대가 천 길 낙락장송 같은 인재라 하면
攀附如吾類縈虆 반부여오류영류
나는 넝쿨이나 부여잡는 무리에 불과하네
<不與君同寮 故云 불여군동료 고운
그대와는 동료(같은 직급)가 아니므로 언급하였다.>
率然著出孺茶詩 솔연저출유다시
경솔하게도 유다의 시를 지어 보냈는데
豈意流傳到吾子 기의유전도오자
그대에게 전해질 줄을 어찌 생각했으리
見之忽憶花溪遊 견지홀억화계유
시를 보고 놀던 화계가 갑자기 생각나고
<花溪 茶所產 君管記晉陽時往見 故來詩及之 화계 다소산 군관기진양시왕견 고래시급지
화계는 차가 나는 곳인데, 그대가 진양에서 관기로 있을 때 찾아가 보았으므로 화답한 시에 언급하였다.>
懷舊悽然爲酸鼻 회구처연위산비
옛일 생각하니 서러워 콧날이 찡하여
品此雲峯未嗅香 품차운봉미후향
운봉 차의 품위 있는 향취를 못 맡아도
宛如南國曾嘗味 완여남국증상미
남방에서 예전에 마시던 맛과 같구나
因論花溪採茶時 인논화계채다시
그래서 화계에서 차 따던 때를 말하면
官督家丁無老稚 관독가정무노치
관에서 장정 노인 아이까지 감독하여
瘴嶺千重眩手收 장령천중현수수
험준한 산중에서 간신히 손으로 따서
玉京萬里頳肩致 옥경만리정견치
머나먼 서울에 어깨 멍들도록 날랐네
此是蒼生膏與肉 차시창생고여육
이는 바로 백성들의 고혈과 살점이니
臠割萬人方得至 연할만인방득지
만인이 수탈로 여위고 나라만 득이네
一篇一句皆寓意 일편일구개우의
시 한 편 말 한마디 모두 뜻이 있으니
詩之六義於此備 시지육의어차비
시의 육의가 여기에 갖추어져 있구나
隴西居士眞狂客 농서거사진광객
농서거사는 참으로 미치광이 같아서
此生已向糟丘寄 차생이향조구기
이미 한평생을 술에 의지하여 살았네
酒酣謀睡業已甘 주감모수업이감
술에 취하여 달게 낮잠을 자려하는데
安用煎茶空費水 안용전다공비수
어찌 차를 달여 공연히 물을 허비할까
破却千枝供一啜 파각천지공일철
많은 가지 망가뜨려 한 모금 차 올리니
細思此理眞害耳 세사차리진해이
이 이치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해만 되네
知君異日到諫垣 지군이일도간원
그대 알았다면 훗날 간원에 들게 되면
記我詩中微有旨 기아시중미유지
내 시의 은밀한 뜻을 부디 기억하게나
焚山燎野禁稅茶 분산요야금세다
산과 들판 불태워 차 공납을 금지하면
唱作南民息肩始 창작남민식견시
남녘 백성들 어깨를 쉬면서 노래하리라
※孫翰長(손한장) : 고려 후기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 태수(太守)를 역임한 문신인 손득지(孫得之, 생몰년 미상). 이규보(李奎報) 이인로(李仁老) 등과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한림(翰林)으로 활동하였다.
※熊掌(웅장) : 곰 발바닥이란 뜻이나, 전하여 좋아하는 것 또는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물고기는 내가 원하는 바이고,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하리라. [魚 我所欲也 熊掌 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삶 또한 내가 원하는 바이며, 의 또한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리라. [生 亦我所欲也 義 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라고 하였다.
※蓬萊宮(봉래궁) : 당나라 장안에 있던 궁전의 이름. 원래는 대명궁(大明宮)이었는데 고종(高宗) 때 확장공사를 하여 봉래궁으로 이름을 고쳤다. 전하여 대궐을 의미한다.
※吮墨(연묵) : 붓을 핥다. 문장을 지으려고 고심을 하다.
※銀臺(은대) : 승정원(承政院)의 별칭(別稱)으로, 왕명(王命)의 출납(出納)을 담당하였다.
※攀附(반부) : 어떤 연줄을 타고 섬기어 따름. (어떤 것에 의지하여) 기어오르다. 아부하여 승진이나 부를 구하다. 빌붙다.
※孺茶(유다) :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차. 이른 봄 잔설(殘雪) 속에 싹튼 어린잎으로 만든 차로, 그 향기와 단맛이 각별하여 왕실의 전용물이었다.
※臠割(연할) : 빼앗기고 여위다.
※六義(육의) : 시경(詩經)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시체(詩體)와 시법(詩法)인 풍(風) 아(雅) 송(頌) 부(賦) 비(比) 흥(興)을 말한다. 시체(詩體)인 풍(風)은 성정(性情)을 읊은 것으로, 주(周) 왕조의 사회와 정치와 도덕과 풍속 등을 반영하며, 아(雅)는 당시의 정치를 찬미하거나 풍자한 것이며, 송(頌)은 종묘에서 제사 지내는 것이다. 시법(詩法)이자 수사 기교(修辭技巧)인 부(賦)는 직서법(直敍法)이고, 비(比)는 비유법(比喩法)이며, 흥(興)은 주제의 서술에 앞서 흥을 돋우는 방법을 말한다.
※隴西居士眞狂客(농서거사진광객) : 농서거사(隴西居士)는 감숙성(甘肅省) 농서(隴西) 출신인 이백(李白)을 말한다. 이백(李白)을 자유분방하고 술을 즐기는 호방한 성격과 시풍(詩風)으로 진광객(眞狂客)으로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