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居暮春 (촌거모춘) - 黃玹 (황현)
村居暮春 촌거모춘 黃玹 황현
시골집에서 저문 봄에
竹牖經旬始暢開 죽유경순시창개
열흘 만에 비로소 대나무 창을 활짝 여니
晴天姸日滿池臺 청천연일만지대
화창하게 맑은 하늘 연못 누대에 가득하네
不知春暮已如許 부지춘모이여허
이미 이 정도로 봄이 저문 줄을 몰랐는데
飛絮紛紛去又來 비서분분거우래
버들 솜이 이리저리 어지러이 날리는구나
桃紅李白已辭條 도홍이백이사조
붉은 복사꽃 흰 자두꽃은 이미 떨어지고
轉眼春光次第凋 전안춘광차제조
눈 돌려보니 봄빛이 차례대로 사라는구나
好是西簷連夜雨 호시서첨연야우
서쪽 처마 아래 연일 내린 밤비를 반기며
靑靑一本出芭蕉 청청일본출파초
푸르고 푸른 파초 한 뿌리가 나오고 있네
一蝶西來一蝶東 일접서래일접동
나비가 한 마리씩 동서쪽에서 날아오더니
偶然群蝶鬪成叢 우연군접투성총
어느새 나비 떼가 무리를 이루어 다투네
世間戰伐何曾異 세간전벌하증이
인간 세상의 전쟁이 어찌 이와 다르리오
倚杖閒看閱始終 의장한간열시종
지팡이 의지해 한가로이 결말을 지켜보네
荊扉斜掩碧溪風 형비사엄벽계풍
벽계 바람 불어와 사립문이 기우뚱 닫히고
水溢塘坡細路通 수일당파세로통
못 둑에는 물이 넘쳐 좁은 길로 흘러가네
衝却幽鶯聲乍斷 충각유앵성사단
은은히 들리던 앵무새 소리 잠깐 끊어지고
叱牛人過柳陰中 질우인과유음중
버들 그늘 사이로 소 모는 사람 지나가네
隨意相尋野屧輕 수의상심야섭경
발걸음 가볍게 생각나는 대로 찾아갔다가
門前厭聽讀書聲 문전염청독서성
문 앞에서 글 읽는 소리를 실컷 들었네
十年湖海看花伴 십년호해간화반
십 년 동안 강호에서 꽃구경 함께했는데
强半人間老舌耕 강반인간노설경
쉰 살이 넘어 속세에서 설경하며 늙어가네
<訪小川 방소천
소천을 방문하였다.>
麥翠輕凉立夏天 맥취경량입하천
입하 때 보리 푸르고 시원한 바람 불 때
犂杷隨後婦兒前 이파수후부아전
아녀자 앞서가고 쟁기 맨 소가 뒤따르네
一生不得蠶桑力 일생부득잠상력
평생을 누에 치며 힘써도 얻는 것 없이
且向高田種木綿 차향고전종목면
높은 밭에다 또 목화를 심으러 가네
※强半(강반) : 절반을 넘다. 나이가 100세의 절반인 50세가 지났다는 뜻이다.
※舌耕(설경) : 혀를 놀려 생계를 삼는다는 뜻으로, 독서하거나 강학하는 것을 말한다. 한(漢) 나라 때의 가규(賈逵)가 경문을 가르치자, 학생들이 몰려들어 곡식이 창고에 가득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가규는 힘으로 경작하는 것이 아니라, 혀로 경작한다.’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다.
※小川(소천) : 조선 말기의 시인인 왕사찬(王師瓚, 1846~1912)의 호이다. 자는 찬지(贊之). 고향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면서 시 창작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매천은 그를 ‘남방 3대 시인’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