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三月三日 (삼월삼일) - 李穡 (이색)

-수헌- 2025. 3. 30. 16:44

三月三日   삼월삼일     李穡   이색  

삼월 삼짇날에

 

病中又見今年春 병중우견금년춘

올해도 또 병중에 봄을 만나고 보니

三月三日天氣新 삼월삼일천기신

삼월 삼짇날은 천기도 새롭구나

長安樂事久牢落 장안악사구뢰락

장안에 즐거운 일 드물어진 지 오래니

賴是少陵初寫眞 뇌시소릉초사진

그래서 소릉의 진정을 베끼기 시작했네

當時豪麗宛如昨 당시호려완여작

당시의 웅장 화려함이 마치 어제 같아

至今可想椒房親 지금가상초방친

지금도 초방의 친척을 상상할 수 있네

東韓岧嶤扶蘇山 동한초요부소산

동한에는 부소산이 높다랗게 서 있고

山下碧澗聲潺潺 산하벽간성잔잔

산 아래 푸른 계곡은 물소리 잔잔하니

宣仁一帶沙川碧 선인일대사천벽

선인관 일대에는 모래 냇물이 푸르러서

可濯可沿淸且閑 가탁가연청차한

맑고 한적하여 씻기 좋고 놀기 좋구나

芊綿芳草城東南 천면방초성동남

향기로운 풀 무성하게 이어진 성 동남의

急管長甁春夢間 급관장병춘몽간

요란한 음악과 큰 술병도 일장춘몽이네

君門九重天地隔 군문구중천지격

구중궁궐은 하늘과 땅처럼 떨어져 있고

墳墓蒼茫鎭江曲 분묘창망진강곡

선영은 아득히 진강 구비에 계시는데

寒食淸明幾虛負 한식청명기허부

한식 청명을 얼마나 헛되이 보냈던지

梨花寂寞莓苔綠 이화적막매태록

배꽃은 적막한데 푸른 이끼만 끼었네

重房雲集奉恩庭 중방운집봉은정

중방이 봉은사 뜰에 구름처럼 모여서

對越聖祖歆威靈 대월성조흠위령

우리 성조에 대하여 위령에 제사하고

醮餘飮福尙逮下 초여음복상체하

제사 남은 음식 하인까지 음복하는데

肯念老牧方伶仃 긍념로목방령정

늙은 목은은 고독하니 어찌 생각하나

肯念老牧方伶仃 긍념로목방령정

늙은 목은은 고독하니 어찌 생각하나

韓山山下雲冥冥 한산산하운명명

한산의 무덤 아래는 구름만 어둡구나

宣尼當日不稅冕 선니당일불탈면

공자는 당일 면류관을 벗지 않았는데

東周一語誰其聆 동주일어수기령

동주란 한마디는 누가 들었단 말인가

 

※賴是少陵初寫眞(뇌시소릉초사진) : 두보(杜甫)가 장안(長安)의 남쪽 두릉(杜陵)의 구택(舊宅)에서 소릉야로(少陵野老)라 자호하고 시를 읊으며 지냈는데, 여기서는 목은(牧隱)이 두보가 삼월 삼짇날 봄놀이 나온 양귀비의 미모를 묘사한 여인행(麗人行)이란 시를 모방하여 쓴다는 의미이다.

 

※椒房親(초방친) : 초방(椒房)은 후비(后妃)가 기거하는 궁실이다. 초분(椒粉:산초가루)으로 칠하고 장식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후비(后妃)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초방친(椒房親)은 후비(后妃)의 육친이란 의미이다. 두보(杜甫)의 시 여인행(麗人行)에도 ‘이들 중에서도 운막에 있는 황후의 육친은, 큰 나라 명호를 하사 받아 괵국부인 진국부인으로 불리네. [就中雲幕椒房親 賜名大國虢與秦]’라는 구절이 있다.

 

※急管長甁春夢間(급관장병춘몽간) : 소동파(蘇東坡)가 해남에서 유배중일 때 하루는 큰 표주박을 메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다 70 노파를 만났는데, 그 노파가 ‘한림학사로 있던 지난날의 부귀가 한바탕 봄꿈이로군요. [內翰昔日富貴 一場春夢]’라고 하자 소동파가 ‘그렇다’고 대답한 일화가 있다.

 

※梨花寂寞莓苔綠(이화적막매태록) : 소식(蘇軾)의 송표제정육지초주(送表弟程六知楚州) 시에 ‘공을 세우고 백발이 되면 일찍 돌아와서, 우리 함께 배꽃 마주해 한식을 보내지 않으려나. [功成頭白早歸來 共藉梨花作寒食]’ 한 데서 온 말로, 배꽃은 없고 이끼만 낀 것은 한식날 선영에 성묘하지 못한 것을 한탄한 말이다,

 

※重房(중방) : 중방(重房)은 고려 때 군의 지휘관인 상장군(上將軍), 대장군(大將軍) 등이 모여서 군사(軍事)를 의논하던 기관명으로, 전하여 장군들을 가리킨다.

 

※聖祖(성조) : 성조(聖祖)는 고려 태조(太祖)를 말한다. 개성(開城)의 봉은사(奉恩寺)에 태조의 진영(眞影)을 봉안(奉安)하고 제사를 지낸다.

 

※韓山山下雲冥冥(한산산하운명명) : 한산(韓山)은 충남 서천의 옛 지명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본관(本貫)이다. 따라서 한산산(韓山山)은 목은(牧隱)의 선영(先塋)을 의미하며, 성묘를 못함을 한탄하는 표현인 듯.

 

※宣尼當日不稅冕(선니당일불세면) : 선니(宣尼)는 한나라 평제(平帝) 때 포성선니공(褒成宣尼公)으로 추시(追諡)된 공자를 말한다. 공자가 노(魯) 나라 사구(司寇)로 있을 때, 나라에서 교제(郊祭)를 지내고 나서 그 제육(祭肉)을 대부(大夫)인 공자에게 당연히 내렸어야 하는데도 내리지 않자, 공자가 그 무례함을 핑계 삼아 면류관을 벗지도 않은 채 노나라를 떠난 일이 있었다.

 

※東周一語誰其聆(동주일어수기령) : 또 노나라의 공산불요(公山弗擾)가 공자를 불러서 공자가 가려 하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갈 필요가 없다고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나를 부르는 것이 어찌 까닭이 없겠느냐, 만일 나를 써주기만 한다면 나는 이 나라를 동주로 만들리라. [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하였는데, 앞의 고사와 서로 배치되는 점을 말한다. 여기서는 목은 자신에게도 의당 나라에서 예우를 해 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음을 공자의 일에 비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