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分日降霜 (추분일강상) - 李敏求 (이민구)
秋分日降霜 추분일강상 李敏求 이민구
추분에 서리가 내리다
郊野厭冷雨 교야염랭우
성 밖 들판에 찬비 가득 내려서
禾穀困離披 화곡곤리피
곡식 낱알이 떨어져서 괴롭구나
穡事恐晼晩 색사공원만
가을걷이가 늦어질까 두려워서
田畯已嗟咨 전준이차자
권농관이 벌써 탄식을 하네
奈何昊穹意 내하호궁의
하늘의 생각은 무엇이었기에
降霜亦不遲 강상역불지
서리를 일찍 내리게 하였나
秋分下嚴威 추분하엄위
추분에 내려 거센 위세 부리니
兩歲若素期 양세약소기
두 해가 본래 약속한 듯하네
節氣固有序 절기고유서
절기는 고유한 차례가 있는데
無乃爽所宜 무내상소의
마땅함이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淸晨延四望 청신연사망
맑은 새벽에 사방을 바라보니
極目凝寒眵 극목응한치
온통 찬 눈곱처럼 엉겨 붙었네
群物被肅殺 군물피숙살
만물이 모두 숙살을 당하니
美惡俱淪夷 미악구륜이
좋은 것 나쁜 것이 함께 몰락했네
旭日晞草木 욱일희초목
아침햇살이 초목들을 말려줘도
枯葉盡低垂 고엽진저수
마른 잎들은 모두 맡으로 처졌네
時稼況稚弱 시가황치약
하물며 때맞춰 심은 여린 작물은
焉得強支持 언득강지지
어찌 굳세게 견딜 수 있을까
饑荒兼力役 기황겸력역
굶주린 데다 노역에도 시달리니
民命僅如絲 민명근여사
백성들 목숨이 겨우 실낱같구나
我患釜生塵 아환부생진
나는 솥에 먼지 생길까 걱정이니
溝壑奚足悲 구학해족비
구렁에 버려진들 어찌 슬퍼하랴
但懼封域內 단구봉역내
다만 두려운 건 다스리는 지역에
黎首靡孑遺 여수미혈유
백성들이 쓰러져 없어질 것 같아서네
上帝本聰明 상제본총명
상제께서는 본래 총명하시어서
庶徵各相隨 서징각상수
온갖 징후가 서로 따르게 하는데
邦危兵又動 방위병우동
나라가 위태로워 또 군사를 움직이니
豈無召癘疵 기무소려자
어찌 재앙을 부르지 않겠는가
人方咎眞宰 인방구진재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탓하지만
眞宰安肯尸 진재안긍시
하늘인들 어찌 주검을 옳게 여길까
歎息謂父老 탄식위부로
부로께서 탄식하며 이르는 말씀이
勿言天可欺 물언천가기
하늘이 속인다고 말하지 말라 하네
※田畯(전준) : 전준(田畯)은 농사일을 독려하는 권농관(勸農官)을 말한다.
※兩歲若素期(양세약소기) : 지난해에도 추분에 서리가 내렸는데, 올해도 추분에 서리가 내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 같다는 말이다.
※肅殺(숙살) : 가을의 쌀쌀한 기운이 풀이나 나무를 말려 죽임. 서리가 내려서 곡식이든 잡초든 가릴 것 없이 모두 시들었다는 말이다.
※庶徵(서징) : 홍범구주(洪範九疇) 중 여덟 번째 항목으로, 비가 내리고〔雨〕 볕 들고〔暘〕 덥고〔燠〕 춥고〔寒〕 바람 부는〔風〕 등의 좋고 나쁜 자연 현상을 관찰하여 징험 한다는 뜻이다.
※眞宰(진재) : 노자와 장자의 학설에서, 도의 본체인 하늘을 이르는 말. 조물주나 만물의 주재자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