紫薇花 (자미화) - 楊萬里 (양만리)
지긋지긋한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니 7월 들어 곳곳에서 자미화(紫薇花)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자미화(紫薇花)는 배롱나무의 꽃으로 배롱이 백일홍과 발음이 비슷하고, 붉은 꽃이 100일 동안 핀다고 하여 백일홍(百日紅)이라고도 한다. 국화과의 초본식물 백일홍(百日紅)과 구분하여 목 백일홍이라고도 하며, 만당홍(滿堂紅)이라고도 부른다. 배롱나무의 꽃은 붉은색과 오랫동안 피어 변하지 않는 단심(丹心)을 뜻하기 때문에 궁궐이나 종묘를 비롯한 서원의 사당 및 묘소 등에 많이 심었다. 자미는 북극성인 자미성(紫微星)을 의미하기에 고대 중국에서는 자미원(紫微垣)을 천제(天帝)가 사는 곳으로 생각하여 낙양의 자미성(紫微城), 북경의 자금성(紫禁城)처럼 궁궐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당나라 현종은 왕의 명령을 짓고 반포하는 관청인 중서성(中書省)에 자미화를 심고 자미성(紫微省)이라 불렀다. 자미화(紫薇花)는 한 번 피어서 백일동안 피어 있는 게 아니라 피고 지는 것을 반복하여 꽃이 계속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송나라 때 시인으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양만리(楊萬里)도 ‘누가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했던가. [誰道花無紅十日]’ 라고 자미화를 표현하였다.
紫薇花 자미화 楊萬里 양만리
백일홍
似痴如醉弱還佳 사치여취약환가
바보처럼 취한 듯 시들다 다시 피어나고
露壓風欺分外斜 노압풍기분외사
이슬에 눌리고 바람에 속은 듯 기울었네
誰道花無紅十日 수도화무홍십일
그 누가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했던가
紫薇長放半年花 자미장방반년화
자미화는 반년이나 오래 꽃을 피우는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송나라 때의 시인 양만리(揚萬里)가 납전월계(臘前月季)라는 시에서 처음 사용하여 유명해진 시구(詩句)인데, 뒷날 인무천일호(人無千日好)나 권불십년장(權不十年長) 등과 같이 인생이나 권력 인간관계의 무상함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臘前月季 납전월계 楊萬里 양만리
섣달에 핀 월계화
只道花無十日紅 지도화무십일홍
다만 열흘 붉은 꽃 없다고 생각했는데
此花無日無春風 차화무일무춘풍
이 꽃은 햇볕도 봄바람도 없이 피었네
一尖已剝胭脂筆 일첨이박연지필
연지 빛 붓 같은 봉오리가 이미 벌어져
四破猶包翡翠茸 사파유포비취용
비취색 꽃받침이 터진 봉우리를 감쌌네
別有香超桃李外 별유향초도리외
복숭아 오얏 뛰어넘는 향기 따로 있어
更同梅斗雪霜中 경동매두설상중
눈서리 가운데서도 매화와 다투는구나
折來喜作新年看 절래희작신년간
새해를 맞이하려고 기쁘게 꺾어왔는데
忘却今晨是季冬 망각금신시계동
오늘 새벽이 겨울의 끝인 것을 잊었네
*양만리(楊萬里,1127~1206) : 송(宋) 나라 때 시인. 자는 정수(廷秀), 호는 성재(誠齋). 육유(陸游) 범성대(范成大) 우무(尤袤)와 함께 남송 4대가(南宋四大家)라고 불리며 명성을 떨쳤다. 다작 시인으로 유명한 그는 평생 동안 2만여 수의 시를 지었는데 지금은 4,200여 수만이 남아 있다 한다.
창녕군 유어면 진창리 경모당(敬慕堂)의 배롱나무
경모당은 청주양씨(淸州楊氏)의 시조인 충헌공(忠憲公) 양기(楊起)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창녕군 유어면 광산리 광산서당(光山書堂)의 배롱나무
광산서당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 군사와 싸우기 위해 창녕 일대의 의병을 모아 출정한 양훤(楊喧)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