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苦熱 (무더위) - 尹愭 (윤기)

-수헌- 2022. 8. 15. 11:31

오늘이 말복(末伏)이라 곧이어 처서(處暑)가 다가오고, 무더위도 이젠 물러갈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불볕더위는 극성이고 심지어는 때 아닌 늦장마 폭우까지 겹쳐 난리다.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의 시(詩)처럼 은하수라도 기울여서 더위를 식히고 싶은 심정이나 또 수해를 입을까 봐 이럴 수도 없을 것 같다. 처서가 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고 했는데, 극성인 파리나 모기같은 벌레들도 함께 사라지겠지.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의 시에 무더위와 파리 모기 같은 벌레들의 극성에 시달리는 심정을 잘 표현하였다.

 

苦熱 고열       尹愭 윤기  

무더위 

 

陽烏赫烈一何威 양오혁렬일하위

맹렬한 붉은 태양이 어찌나 위세가 센지

火傘張空爐四圍 화산장공로사위

불 일산을 펼치고 화로로 둘러싼 듯하네

道上行人多暍病 도상행인다갈병

길 위의 사람들은 목이 말라 괴로워하고

園中蒔菜盡萎腓 원중시채진위비

동산에 심은 채소는 시들어 죽어가는구나

思將赤脚層氷踏 사장적각층빙답

맨발로 층층 얼음 밟고 싶은 생각 들어도

徒喚蒼頭巨扇揮 도환창두거선휘

종놈 불러서 큰 부채나 부치게 해야겠네

安得雲梯登九萬 안득운제등구만

어찌하면 사다리 얻어 높은 하늘 올라서

手傾銀漢洗炎暉 수경은한세염휘

은하수를 기울여서 불볕더위 씻어낼까

 

※陽烏(양오) : 전설상의 새로서 태양 속에 있다는 발이 세 개 달린 삼족오(三足烏)인데, 여기서는 태양을 뜻한다.

※蒼頭(창두) : 예전 사내종을 이르는 말.

 

 

苦熱 託喩 고열 탁유      尹愭 윤기 

무더위 빗대어 비유하다.

 

夏日不可暮 하일불가모

여름날은 해도 저물지 않으니

令人愁益老 영인수익로

늙어가는 사람을 근심스럽게 하네

當空火傘大 당공화산대

하늘엔 불덩이가 큰 일산처럼 떴고

滿地炎海浩 만지염해호

땅에는 불바다가 넓게 가득 차있네

無計逃命全 무계도명전

목숨 보전하러 달아날 방법 없으니

何處安身好 하처안신호

어디서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

況復蒼蠅多 황부창승다

게다가 푸른 파리까지 다시 들끓어

侵昏自晨早 침혼자신조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습격하네

吮嘬羹變味 연최갱변미

국물을 물고 빨아대니 맛도 변하고

點汚衣失皓 점오의실호

똥을 싸 점으로 흰 옷이 더러워지네

集筆劒欲拔 집필검욕발

붓 끝에 달려들 땐 칼 빼들고 싶고

萃鬢心尤惱 췌빈심우뇌

수염에 달려들 땐 더욱 짜증 나구나

無賴巨扇揮 무뢰거선휘

커다란 부채 휘둘러도 소용이 없고

安得大帚掃 안득대추소

큰 빗자루로 쓸어버리면 어떨까

夜深些凉生 야심사량생

밤 깊어져서 서늘함이 조금 생기면

少冀舒煩燥 소기서번조

성가심이 나아질까 조금 기대했는데

其苦反有甚 기고반유심

그 괴로움은 오히려 더 심해져서

通昔憂懆懆 통석우조조

밤새도록 근심스레 불안에 시달렸네

恣噆沸蚊蝱 자참비문맹

모기와 등에가 들끓어서 마구 깨물고

迭侵騰蠍蚤 질침등헐조

전갈과 벼룩이 날뛰며 귀찮게 덤비네

或云化坌埃 혹운화분애

혹은 먼지와 티끌이 변해 생긴다 하고

復道生茂草 부도생무초

또 무성한 풀에서 생긴다고도 하는데

微物爲人害 미물위인해

미물이지만 사람에게 해를 끼치니

誰能卽誅討 수능즉주토

즉시 없애 버릴 사람 누가 있을까

爬搔不停手 파소불정수

긁어 대느라고 손을 멈추지 못하니

無由開懷抱 무유개회포

가슴을 열고 감싸줄 이유가 없구나

雞鳴一何催 계명일하최

오로지 닭 울기를 얼마나 재촉했나

旋又出杲杲 선우출고고

또다시 해가 떠서 높다랗게 솟았네

奚但苦炎蒸 해단고염증

어찌 단지 찌는 더위만 괴로울까

重以困霖潦 중이곤림료

장마의 큰 비도 크게 괴롭구나

而我素憚暑 이아소탄서

나는 본래 무더위를 겁내는 데다

衰境尤愁倒 쇠경우수도

노년이 되니 더욱 시름에 겹구나

疾病轉侵尋 질병전침심

질병도 더욱 깊이 침노해 와서

形骸已枯槁 형해이고고

이미 몰골이 야위고 말라 가네

執熱未逝濯 집열미서탁

무더위에도 씻으러 가지를 못하니

終恐不自保 종공불자보

끝내 자신을 못 지킬까 두렵네

乞借層氷脚 걸차층빙각

층층의 얼음을 얻어다가 발을 담고

願作寒水藻 원작한수조

시원한 한천수나 만들어 먹고 싶네

何當迎颯飈 하당영삽표

하지만 찬바람을 어떻게 끌어와서

正氣肅霜昊 정기숙상호

크게 쌀쌀하게 기운을 바로잡을까

 

※集筆(집필) : ‘승집필단(蠅集筆端)’의 준말. 위나라 때에 성격이 급한 왕사(王思)라는 인물이 붓을 잡고 글씨를 쓰려는데, 파리가 붓 끝에 달려들어 쫓아내면 다시 오곤 하였다.〔思又性急 嘗執筆作書 蠅集筆端 驅去復來〕 이렇게 몇 차례 일어나 파리를 쫓아도 뜻대로 되지 않자 붓을 집어던지고 탑자(榻子)를 부수었다고 하는 고사를 인용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