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中 (백중) - 徐居正 (서거정)
앞서 소개한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백중절(百中節)을 불교의 우란분절(盂蘭盆節)의 의미에 맞추어서 노래하였다. 목은 이색은 고려 시대 사람이라 당시의 국교였던 불교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이에 맞는 시를 지었지만,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 백중이 불교 또는 유교의 영향을 받은 명절로 인식되어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 옛 선비들이 백중절을 노래한 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 같은 이는 아예 백중절을 이교도의 행사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놀고 즐기는 명절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七月十四日 칠월십사일 徐居正 서거정 (四佳集)
7월 14일에
蓂報中元節 명보중원절
명협이 중원절이 되었음을 알리니
蘭供幾處盆 난공기처분
우란분 공양은 몇 군데서나 올릴까
斯文暗風雨 사문암풍우
사문은 비바람이 치듯이 어두운데
異敎遍乾坤 이교편건곤
이교는 천지간에 널리 퍼져가는구나
結夏僧闌會 결하승란회
결하에 들었던 승려 모임을 끝내니
悲秋客斷魂 비추객단혼
애 끊어지는 길손 가을을 슬퍼하네
悠悠空歲月 유유공세월
하염없이 헛되이 세월만 보내면서
極目望田園 극목망전원
눈길 닿는 데까지 전원만 바라보네
※蓂莢(명협) : 명협(蓂莢)은 요(堯) 임금 때에 뜰에 났다는 서초(瑞草)의 이름이다. 매월 초하루부터 15일까지는 매일 한 잎씩 나오고, 16일부터 그믐날까지는 매일 한 잎씩 떨어졌으므로 이것을 인하여 달력을 만들었다는 고사가 있다.
※盂蘭盆(우란분) : 불가(佛家)에서 매년 음력 7월 15일에 선조(先祖) 및 생존한 부모의 고통을 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해서 시방(十方)의 불승(佛僧)들에게 베푸는 불사(佛事)를 말하며, 우란분회(盂蘭盆會)라고 한다.
※斯文(사문) : 사문(斯文)은 이 글, 이 학문(學問), 이 도(道)라는 의미로 유교(儒敎)의 학문이나 도의 문화 또는 유학자(儒學者) 곧 선비를 말한다.
※結夏(결하) : 승려(僧侶)가 음력 4월 16일부터 7월 15일까지 90일 동안 출입을 금하고 한 곳에 모여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말하는데, 하안거(夏安居)라고도 한다. 10월 16일부터 정월 15일까지 90일 동안을 위와 같이 하는 것은 동안거(冬安居)라 한다.
中元日有吟 寄子固 중원일유음 기자고 徐居正 서거정 (四佳集)
중원일에 읊어서 자고에게 부치다.
一年又是中元節 일년우시중원절
한 해가 지나 또 중원절이 되었으니
苒苒浮生奈老何 염염부생내로하
덧없는 인생 늙어가는 걸 어찌하랴
赤壁幾番經壬戌 적벽기번경임술
적벽의 임술년이 몇 번이나 지났던가
更無人似老東坡 경무인사로동파
늙은 동파 같은 이는 다시없구나
池館朝來小雨過 지관조래소우과
연못 객사에 아침 비가 잠시 지나가니
碧梧陰靜挾秋多 벽오음정협추다
벽오동 그늘이 맑은 가을 기운을 띠네
盂蘭供佛非吾事 우란공불비오사
우란공양 불사는 내가 할 일 아니기에
穩酌香醪對小娥 온작향료대소아
젊은 미녀 마주하고 좋은 술 마신다네
※赤壁幾番經壬戌(적벽기번경임술) : 소동파((蘇東坡)가 일찍이 임술년 가을 7월 16일과 같은 해 10월 보름, 두 차례에 걸쳐 적벽 아래 강에서 객들과 함께 배를 타고 놀면서, 전후 두 차례에 걸쳐 유명한 전 적벽부(前赤壁賦)와 후 적벽부(後赤壁賦)를 지은 고사를 말한다.
※盂蘭供佛非吾事(우란공불비오사) : 우란 공양 불사는 불교 의식이기에 유자(儒者)인 작가는 관심 없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