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청명(淸明), 한식(寒食)- 서거정(徐居正)

-수헌- 2022. 3. 28. 17:21

4월 5일은 24절기 중 다섯 번째인 청명(淸明)이고 다음날인 6일은 한식(寒食)이다. 또 이때가 음력으로 2월 말 또는 3월 초에 해당하여 삼짇날(음력 3월 3일)도 이시기에 있다. 한식은 춘추 시대 진(晉) 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면산(綿山)에서 불에 타 죽은 것을 애도하는 뜻에서 화식(火食)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었던 데서 유래하였는데 이날이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라 항상 4월 5일이나 6일에 해당한다. 청명도 동지로부터 105일 또는 106일째 되는 날이라 한식과 하루차이거나 같은 날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식날에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는 풍습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청명일에 성묘한다고 한다. 한식 전날에는 모든 불씨를 금하기 때문에 한식날에 대궐에서 새로운 불씨를 신하에게 내렸다고 한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시인인 서거정(徐居正)이 한식 전후와 청명절, 삼짇날에 대하여 지은 시가 그의 저서 사가집(四佳集)에 다수 전해진다.

 

 

寒食前一日 한식전일일     徐居正 서거정

한식 하루 전에 읊다

 

南郭雨晴日 남곽우청일

남쪽 성곽에 비가 개고 해가 뜨니

東風寒食時 동풍한식시

한식에 때 맞춰 봄바람이 부는구나

其於春荏苒 기어춘임염

봄이 되니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는데

不奈病支離 불내병지리

병은 지리하여 어찌할 수가 없구나

已攬歸田興 이람귀전흥

이미 전원에 돌아갈 흥을 가졌으니

仍懷上塚思 잉회상총사

조상님을 성묘할 생각이 드는구나

明朝傳蠟燭 명조전랍촉

내일 아침엔 납촉을 전해 올 테니

更憶古人詩 경억고인시

옛사람의 시가 다시 생각나는구나

 

※荏苒(임염) : 세월이 덧없이 흘러감.

※支離(지리) : 흩어져 있다. 불완전하다. (말이나 글이) 무질서하다. 조리가 없다. 산란하다.

※上冢(상총) : 성묘하다. 묘지에 가서 제사 지내다.

※傳蠟燭(전납촉) : 예전에는 한식날 임금이 신하에게 촛불을 하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古人詩(고인시) : 옛사람의 시는 특정되지는 않으나, 옛 시인들이 한식날을 주제로 개자추(介子推)의 충절과 전납촉(傳蠟燭)의 풍속에 대해 읊은 시가 다수 전한다.

 

寒食 한식     徐居正 서거정

한식날에 짓다

 

百五風光寒食天 백오풍광한식천

백오일 지난 한식날의 하늘 풍광이

今年風雨如去年 금년풍우여거년

올해도 지난해처럼 비바람이 부는구나

生憎弱柳不堪折 생증약류불감절

약한 버들이 못 견뎌 꺾이는 게 미운데

無賴小桃還可憐 무뢰소도환가련

의지할 곳 없는 복사꽃이 가련 해지네

悵望松阡負上塚 창망송천부상총

성묘는 못하고 서글피 묘소만 바라보니

閑過綺陌皆禁煙 한과기맥개금연

도성 거리 지나도 연기가 모두 끊겼네

沽來冷酒莫辭醉 고래랭주막사취

찬 술 사다가 취하는 걸 사양하지 말고

未到淸明携被眠 미도청명휴피면

청명이 오기 전에 이불 덮고 푹 자야지

 

※松阡(송천) : 소나무를 심은 무덤.

綺陌(기맥) : 비단천의 실오라기가 가로 세로 수없이 교차된 것처럼 매우 어지럽고 복잡한 도회지의 도로를 말한다.

 

 

寒食後一日 한식후일일      徐居正 서거정

한식(寒食) 다음날에 짓다.

 

嬌陰漠漠弄靑春 교음막막롱청춘

옅은 그늘은 아득히 봄을 희롱하고

雪晴池塘起碧鱗 설청지당기벽린

눈 갠 연못엔 푸른 물결이 이는구나

天地爾來時事變 천지이래시사변

천지에 그대 올 때 세상사도 바뀌고

煙花觸處客愁新 연화촉처객수신

봄 풍경 닿은 곳엔 나그네 시름 새롭네

一年寒食嘗新火 일년한식상신화

해마다 한식에는 새로운 불을 경험해도

數月他鄕少故人 수월타향소고인

여러달 타향살이에 옛 친구가 없구나

未信此生長健否 미신차생장건부

이 인생 오래 건강할지 믿을 수 없으니

有錢沽酒答佳辰 유전고주답가진

돈 있으면 술을 사서 좋은 때에 보답하리

 

※新火(신화) : 당송(唐宋) 시대 풍속에 한식(寒食) 하루 전날에는 불을 금하고, 한식(寒食) 날에는 다시 불을 일으켜 백관(百官)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을 말한다.

 

 

淸明 청명     徐居正 서거정

 

又値淸明百六日 우치청명백륙일

일백육일만의 청명날을 또 만나니

更傾美酒十千杯 경경미주십천배

다시 좋은 술을 만 배나 마시고

曲闌西畔鉤簾看 곡란서반구렴간

굽은 난간 서쪽으로 발을 걷고 보니

躑躅半開山雨來 척촉반개산우래

철쭉꽃 반쯤 핀 산에 비가 내리는구나

 

 

二月晦 二首 이월회 이수     徐居正 서거정

2월 그믐날에 짓다. 2수

 

三月將來二月闌 삼월장래이월란

이월은 다 가고 삼월이 곧 오려 하니

三分春事二分殘 삼분춘사이분잔

봄 일의 삼분 중에 둘만 남았구나

紛紛墻角杏花雨 분분장각행화우

담 모퉁이에 행화우가 부슬부슬 내리니

坐對黑爐相與閑 좌대흑로상여한

한가로이 검은 화로와 마주해 앉았노라

 

淸明寒食都過了 청명한식도과료

청명절도 한식도 모두 다 지나가고

又近踏靑三月三 우근답청삼월삼

또 삼월 삼짇날 답청절이 가까워지네

悵望家山春草綠 창망가산춘초록

고향 산천 푸른 봄풀을 서글피 바라보다

又隨殘夢到江南 우수잔몽도강남

다시 잔몽을 따라서 강남에 당도하였네

 

※杏花雨(행화우) : 청명(淸明) 시절에 내리는 비이다. 살구꽃이 한창 피는 때이므로 이렇게 일컫는다.

※踏靑節(답청절) : 봄에 야외에 나가 푸른 풀을 밟고 노는 날이라는 뜻으로 진중 세시기(秦中歲時記)에 의하면, 음력 3월 3일에 곡강연(曲江宴)을 베풀어 도인(都人)들이 모두 강가에서 계사(禊事)를 치르고 술을 마시며 청초(靑草)를 밟고 노는데, 이것을 답청이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家山(가산) :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산과 내.

※殘夢(잔몽) : 잠이 깰 무렵에 어렴풋이 꾸는 꿈.

 

 

三月三日 3월 3일     徐居正 서거정

삼월삼짇날에

 

三三逢令節 삼삼봉령절

삼월 삼짇날 좋은 명절을 만나서

一一劾前人 일일핵전인

옛사람 행적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曲水桃花浪 곡수도화랑

도화랑 물결에서 곡수연을 베풀고

深杯竹葉春 심배죽엽춘

죽엽춘 술잔을 깊이 기울여 마셨네

詩憐工部妙 시련공부묘

시는 공부가 절묘하여 사랑스럽고

筆愛右軍眞 필애우군진

글씨는 우군이 뚜렷하여 사랑스럽네

往事皆陳跡 왕사개진적

지난 일은 모두 널린 자취이거니와

多慙老病身 다참로병신

늙고 병든 몸이 매우 부끄럽구나

 

※桃花浪(도화랑) : 복숭아 꽃 필 무렵 얼음이 녹아 시냇물이 불어나 이는 물결.

※工部(공부) :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낸 두보가 3월 3일에 곡강(曲江) 가에서 귀족들 봄놀이의 음란과 사치 등을 풍자한 시 여인행(麗人行)을 지은 것을 묘사한 것이다.

※右軍(우군) : 우군 장군(右軍將軍)을 지낸 명필(名筆)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영화 9년 3월 3일, 왕희지를 비롯한 명사 40여 인이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 모여서 계사(禊事)를 지내고, 지은 시의 서문인 난정서(蘭亭序)는 천하제일의 명필로 일컬어진다.